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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노래도 치과의사도 내 천직', 민병진 서울치과병원 이사장

"아이 러브 유~ 포 센티멘털 리즌…."

10월 28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이어지던 클래식 선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미성(美聲)의 재즈곡이 울려퍼졌다. 귀에 익은 달콤한 가락에 청중들은 환호했고, 부드러운 미소의 중년 신사는 '플라이 미 투 더 문'으로 화답했다. '노래하는 의사' 민병진(閔丙眞.50) 서울치과병원 이사장의 '명사(名士) 음악회' 무대였다.

"3년 만에 큰 무대에 서니까 가슴이 찡하고 몸에 전율이 흐르더군요.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자신의 병원에서 만난 閔이사장은 아직도 그날의 설렘이 생생한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음반 관계자가 찾아왔다"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閔이사장은 1999년 하얏트호텔에서 연 재즈 콘서트로 화제를 모았고, 그랜저 XG 광고모델로 대중에게 더욱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그의 활동은 뜸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춤을 추며 열창하는 모습이 한 신문에 보도된 뒤 '閔원장이 병원 문을 닫았다더라' '이제 의사 안하고 가수 한다더라'는 소문이 퍼진 겁니다. 춤을 더 연습하려고 병원 내 음악실에 거울까지 설치했는데 다 그만뒀습니다. 본업에 지장을 줘서야 되겠습니까."

대학 시절 가수를 하라는 숱한 제의를 뿌리치고 택한 천직(天職)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閔이사장은 서울대 치대 예과 시절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백순진·김태풍(그룹 '4월과 5월')과 함께 '들개들'이란 그룹으로 명동 맥주집 무대를 누볐다. 이후 이수만·고(故) 김정호씨와 함께 활동해 보라는 제의를 받기도 하고, 4월과 5월의 새 멤버 영입 대상에도 올랐지만 그에게는 공부가 더 중요했다.

"할아버님·아버님·저까지 3대가 의사입니다. 가업(家業)인 의사 외에 딴 직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민영성(閔泳星·작고·외과) 전 철도병원장이 그의 조부, 민건식(閔建植.78) 대전 건양대 이비인후과 교수가 그의 부친이다. 閔이사장의 외동딸도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예비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閔이사장은 본과 진학과 함께 음악 활동을 접었다. 서울대 치대·교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보스턴대 치대·하버드대 교정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치과의사 면허증도 땄다. 서른네살에 교정전문 치과를 개업했고 서른여덟살에 치과종합병원장이 됐다.

"병원이 궤도에 오른 88년부터 다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의사의 피와 함께 음악인의 피도 흐르고 있거든요."

閔이사장은 오디오광(狂)인 그의 부친 역시 군의관 시절 사병들과 함께 밴드를 조직했던 경험이 있노라고 털어놓았다. 88년 리베라호텔에서 연 첫 무대에서 부친은 클라리넷으로 재즈곡을 연주하고 그는 베이스 기타로 반주를 했다.

"90년에는 병원에 그랜드피아노와 오디오·노래방 시설을 제대로 갖춘 음악감상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주부를 대상으로 3개월 과정의 클래식 음악 강좌를 열어 졸업생 8백여명을 배출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전문의 12명을 포함해 40명이 근무하는 종합병원의 경영과 진료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閔이사장은 명쾌하게 반박했다.

"얼마 전에도 제가 직접 미국에 가서 최신 미백(美白) 치료법을 도입했습니다. 술과 골프 대신 음악을 즐기는 겁니다. 골프를 치는 시간의 10분의 1만 투자하면 돼죠."

그는 망설이고 있는 동년배들에게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고 조언했다.

"40대부터 제2의 인생이죠. 사진·그림 등 좋아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해보는 겁니다.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4년만 투자해 보세요. 쑥스러워서, 체면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10년이 지난 뒤 후회할 겁니다. 지금 당장 하세요."

- 중앙일보/인물 -

작성자Life

작성일200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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