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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혈액형

혈액형에 대한 나의 철학이
어느정도 정립된 시기는
2002년경 이었던 것으로 기억…

"이전 치과에서는 왜 퇴사하셨나요?" "네. 잠시 몸이 안 좋아서…. 이젠 건강해요."
"네, 근데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네? 혈액형도 말해야 하나요?" "그냥 참고만 하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O형 인데요, 근데 친구들이 A형이라 말하라던데.."

며칠 전 퇴사하게 된 위생사 김모양의 공백을 메우느라 오늘도 면접이 이어진다. 이제 웬만큼 관상학에 대한 일가견이 생겼다고 자평(自評)하지만 오늘도 혈액형에 대한 마지막 질문으로 이어졌고, 상대방은 영 못마땅한 눈치다. 그러나 필자의 손에 쥐어진 이력서에는 'O'와 '?'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암호가 종이를 접는 순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기록된 암호는 원장실 문이 닫힌 후에도 어느 정도 결정이 내려질 때 까지는 계속 참고사항으로서 활용된다.

오늘의 면접자는 경력에 비해 업무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판단되고, 단정한 용모에, 적정한 급여를 요구하므로 일단 채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한가지 참고할 부분은 O형 특성상 기존 직원과 원장과의 감성적인 부분에서 적잖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고, 까다로운 필자가 요구하는 섬세한 어시스트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유력한 채용후보자의 혈액형이 A형인 점이 결정적으로 고려돼 최종 채용키로 한다. 여기서 나머지 직원과 필자의 혈액형은 A형 임을 밝혀 둔다. 'A형만 4명이면 내가 제명(命)에 못살지, O형이나 B형이 필요해.' 참고사항을 적절히 활용한 공평한 채용이었다고 필자는 자기정당화에 성공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ABO식 혈액형은 오스트리아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분류법이 개발됐다. 1930년경에 개발된 이래 70여 년간 수많은 생명을 수혈로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혈액형에 의한 수혈법의 확립 덕택이다. 노벨의학상에 빛나는 이 위대한 업적이 필자에 의해 동양사상에 입각한 관상학으로 효용가치가 절하되는 것에 대해 필자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부디 너무 욕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혈액형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 어느 정도 정립된 시기는 한창 맞선으로 주말을 소진하던 2002년경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색한 분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한두 번 물어본 게 혈액형이었고, 상대방의 성격과 행동을 연관시켜 보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막연하게나마 각각의 정형화된 특징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해 여름, 드디어 혜안(慧眼)을 가진 한 여성과의 맞선자리에서 혈액형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에 이르렀다. 당시 그 여성은 ABO식 단순분류를 넘어서 AO, AA, BO, BB, 이런 식으로 잠재된 항원, 항체에 따른 명확한 분석을 나에게 명쾌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나의 논리적 미숙함을 일단락시켜 주었다.

오늘도 필자의 아침 밥상에는 밑바닥이 까맣게 탄 떡갈비가 올려져 있다. 작은 일에 구애 받지 않는 OO형 혈액형을 가진 집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아무런 불만이 없다. 출근해 보니 정성껏 만들어 놓은 임시치아가 책상에 놓여있다. AA형 혈액형을 가진 이모 위생사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흡족한 마음에 다음달 월급을 좀 올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피잔을 드는데 옆에 놓인 쪽지에 눈길이 간다. '원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수가 많더라도 화내지 마시고 가르쳐주세요.' 오늘 첫 출근한 OO형 위생사의 사전포석이다. 이건 전형적인 BB형의 행동양식이다. 살다 보면 가끔씩 예외는 있는 법이다.

매일 반복되는 진료시간인데 오늘은 뭔가 좀 다르다. 늘 있어왔던 '석션 피해서 프렙하기'도 없었고, 일어날 때 라이트에 머리를 부딪히지도 않았다. "석션!", "리트렉션!" 같은 외마디 절규도 없었다. 최근에 이렇게 섬세한 어시스트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OO형에 대한 나의 개념정리에 수정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돼 필자는 혜안(慧眼)을 가진 그 여성에게 다시 자문을 구하기로 한다.

"여보세요? 나야, 궁금한 게 있어서." "나 지금 바빠,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작은 일에 구애 받지 않는 OO형 혈액형의 집사람은 오늘도 큰일 하느라 바쁘신가 보다. 천기(天氣)를 누설하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신 현 모

·94년 부산치대 졸
·현) 부산 굿모닝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 2004.07.01 -

작성자신현모

작성일2004.07.06

김명희

| 200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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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과도 같은 강진에서
황금과 같은 세월을 보냈고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았음을…

강진!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나의문화유적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일컬었던 한국의 최남단의 땅.
광주에서 대학을 나온 동창들이 서울이나 외국으로 나간 경우가 보통이었거늘, 난 반대로 남편을 따라 생면부지인 시골로 내려간 것이 금년에 17년쯤 됐다.
LA처럼 전 세계의 인종이 모여 사는 곳도 아니요 서울처럼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까마득한 세월을 이 강진에서 보내는 것을 아직껏 후회해본 적이 없다.

세상이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도 느린 소처럼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남도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남아 있어 좋다. 치료가 끝나면 홍시나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갖다 주는 형제와 같은 환자들을 대할 수 있어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6번씩이나 졸업할 정도로 긴 세월을 무난히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고향이기도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어머니의 품속같은 평온함마저 주는 강진의 아름다움인데,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면하기 어렵다.

한국이 3면이 바다인 반도이듯 강진은 바다와 강과 산에 에워 쌓인 참으로 빼어난 지형을 갖고 있는데, 관광객으로 그냥 지나치면 잘 알 수가 없고 강진읍 우두봉을 올라가보면 탐진강이 흘러 남도의 바다로 유입되는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전국 어느 읍을 간다고 해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이런 감흥을 얻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강진의 월출산이 세찬 북풍을 완화시키면서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로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산과 들판에 흐르는 구강포와 끝없이 펼쳐지는 청정한 남도의 바다를 한눈에 안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학문의 저수지라 불리우는 조선이 낳은 위대한 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하면서 대부분의 저술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빗나간 얘기지만 다산의 형인 정약종은 200여 년 전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지금이야 성경에 관한 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 당시 쪽 복음 밖에 없었을 터인데 중요한 교리를 이해하고 있는 수준이 지금 읽어봐도 놀라울 정도의 책을 발간한 신앙인이기도 했는데 결국 순교를 당하게 되는 참으로 빛나는 형제들이다.

다산초당을 가기 전 백련사라는 사찰을 볼 수 있는데 아마 내가 다녀본 절중에서는 단연 으뜸의 경관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멋스럽게 어우러진 울창한 천연 동백 숲,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제주까지 보일 듯한 남도의 바다를 여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는 단연 영랑이 있다고 말을 한다. 흔히 전남을 예향이라고 하지만 그냥 낭송해보아도 가슴에 와 닿는 영랑의 시어는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미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영랑의 시처럼 모란은 여기 강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그분의 생가에서 쉽게 그 모란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갈 수 있다.

이 한정된 지면이 자랑하기엔 너무 부족해 너무 아쉬운데 빼 놀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려청자의 대부분이 강진산이라는 사실이다. 500년 동안 이곳에서 국보를 생산했는데 지금도 전국에서 유일한 관요로 고려시대의 작품을 거의 재현하고 있는 도요지가 있어 한 두 점 소장한다면 좋은 투자가 되리라 생각된다.
이 곳의 음식, 특히 한정식은 빼 놀 수 없는 일품이다.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혹시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강진의 병영면 설성식당에 가면 강진의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데 특히 양념이 잘된 돼지구이는 별미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하멜이 살던 연유로 네덜란드와 자매결연이 맺어져 있고 옛 성을 볼 수 있는 일거양득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얘들 교육 때문에 1시간 거리인 광주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차창가로 비친 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월출산이 밟으면 사금파리처럼 부서질 듯한 인상이 든다. 이 강진을 향한 포도가로 펼쳐진 6월의 짙은 신록과 녹음은 인생을 살만하게 만들고 지친 심신에 생기를 주고 있다.
요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면서 세상의 부귀영화만이 행복이라고 하는 생각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린 아무리 건강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결국 이 멋있는 산하를 두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인데 죽어도 천국이 있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기독교의 진리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난 이제 내 고향과도 같은 강진에서 황금과 같은 세월을 보냈고 많은 것을 받으며 누리고 살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지만 이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이젠 국내외 선교와 이웃의 행복을 위한 조그마한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에게 멀리 외국이나 명승지로 떠나는 것도 좋지만 이 곳 남도에 있는 강진을 들린다면 친절한 안내를 하는 것도 작은 봉사가 아닌가 생각하며 휴가철 한번 바람을 쐬러 오시라는 말로 인사를 나눌까 한다.

김명희

.87년 전남치대 졸
.현)강진치과의원 원장
.대한여자치과의사회 전남지회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4.07.05 -

김형수

| 200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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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치과의사 주 5일 근무제를…

우리는 일주일 중 제7일을 성경에서 나오는 안식일 개념에 따라 휴일로 정해 쉬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5일 일하고 2일을 쉬는 주 5일 근무제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 개정되는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2004년 7월 1일부터 2011년까지는 단계적으로 거의 모든 사업장이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왜 성서의 법칙과 오랜 관습을 깨뜨리고 하루가 아닌 이틀을 쉬는 대변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문명의 발달에 의한 삶의 여유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인간의 관심이 삶을 즐기는 쪽으로 바꾸어지게 되면서, 다음 한 주의 노동을 위한 휴식으로서의 휴일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쉬면서 충분히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는 행복추구로서의 휴일의 개념으로 바뀌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과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병의원의 토요일 휴무는 대다수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물론 토요일 병의원이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환경특집 프로그램인 ‘환경의 역습’을 기억할 것이다. 수은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마치 수은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환자들에게 이것을 쓰고 있는 치과의사들의 비윤리성을 강조하는 듯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방송이 나오기 얼마 전, 보건복지부에서 보낸 공문 하나가 우리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아말감치료를 거부해서도 안 되고, 다른 치료를 하도록 유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간과되어지고 있는 사실 하나를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치과의사나 전문가들의 견해처럼 아말감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데는 이의를 달 생각이 없다. '환경의 역습'에서 아무리 치과의사가 나쁘다고 해도, 아말감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임상견해들을 믿고, 계속 사용하는 현실적 상황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의 역습’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아말감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사용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아말감이 유해해서가 아니라, 수은을 다루는 그 자체의 위험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은이라는 유해한 중금속을 일개 치과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 자체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치과에서 아말감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말감의 유해성은 이제 다른 관점에서 접근되어져야 한다. 아말감을 사용해라는 복지부의 경고나 사용하지 말라는 '환경의 역습'의 메시지가 빠뜨린 가장 중요하고도 보다 위험한 요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아무도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고 애써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단지 치과의사들만이 자신의 건강을 가끔씩 염려하고 있을 뿐이다.

치과의사들의 혈중 중금속농도가 일반인들에 비해 매우 높다는 이야기들을 주위로부터 자주 듣는다. 치과의사 수명이 타 직업군에 비해 낮다는 것도 간혹 매스컴에서 들린다. 우리의 진료환경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알려진 치과의사의 현실을 직시해볼 필요가 있다. 치과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 머리 싸매고 농성하는 파업근로자들의 이슈중 하나가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것이다. 나는 치과의사들의 주 5일 근무제를 엄숙히 주장한다.

갓 개업한 초년시절, 공휴일도 진료를 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개업초년의 조급함과 불안감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과의사로서의 인생은 길기 때문에 우리는 좀더 여유 있게 생각을 해야 한다. 응급환자문제는 그 지역 치과의사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치과는 예약환자가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제도적 장치 없이 개업의가 혼자만 5일 근무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특별한 경우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덧붙혀 치과의사 안식년제 도입을 주장한다. 기간이 7년일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10년이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무적으로 매 10년마다 1년씩 쉬게 함으로써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치과의사의 삶은 보다 윤택하게 될 것이다. 1년 동안의 공백은 협회차원에서 관리해줄 수 있는 치과의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해당 치과의사 자신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제도적으로 협회차원에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형수

.86년 전남치대 졸
.전남 곡성 김치과의원 원장
.(전)전남치대 동창회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4.07.12 -

정규호

| 200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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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인내하며 싫은 것도 하고
감정 상하는 것도 차분히 점검해
조화롭게 이루는 종합예술이다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것이 어언 19년.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된 것만으로도 기쁨이었는데, 인생의 긴 여정 가운데 삶의 고달픔으로 기쁨을 잊고 지낸 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IMF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고들 하는데 신문지상에는 의사, 교수, 고위 공무원 등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조차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보도되고 그들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이해의 마음은, 한 시대를 함께 하는 자로서 측은하기 그지없고, 또 얼마나 인내하면 경제 사정이 나아질까 함께 한숨을 쉬어본다.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부천에서 개원을 했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금의 관악구에 들어오게 됐는데, 이곳에 와서 나의 청춘과 삶의 기둥이 관악구 회원님들로 인해 형성됐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여러 선배님들로 인해 삶의 방식들이 더욱 원숙해 질 수 있었음에 지면으로나마 감사를 드린다.
난 체질상 술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관악구의 회식자리가 많이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선배님들은 배려와 폭력(?)을 슬기롭게 조화시킴으로써 모임을 재미있게 만드셨던 것 같다.
신림반 반장을 하는 것

어떤 면에서는 매우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신림반 반장을 하면서 여러 가지 유익함이 많았음을 알았다.
일단 여러 사람을 알게 됐다는 점과 또 일의 순서와 배려해야 할 것들을 배웠고 또 하기 싫은 순간들을 참아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난 원광대학교 2회 졸업생이기에 동창회장직을 일찍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서로 하기 싫어하는 힘든 자리지만 그 자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4년이나 해야했다. 회장직을 벗어나는데는 수락하는 것보다 몇 곱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기 싫고 빨리 그만두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자리기에 그래도 보람 있게 그 직을 수행했던 것 같다.

직업상 매일 매일 우리는 환자를 본다.
자기만의 작은 공간에서 열심히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를 수리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서로의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면서,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그러면서 아픔도 없어지는 창조적이며 책임감 있는 막중한 의료인으로서의 의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난 기계를 수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어린 시절 많은 가전 제품을 고친다고 하며, 완전히 망가뜨려 놓은 적도 있다.
그런 경제적 상실가운데도 너그럽게 용서받았기에, 자연스럽게 남을 용서할 수 있게 됐고, 또 몇 일씩 고치겠다고 끙끙. 그런 과정은 나에게 인내와 끈기를 갖게 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위의 모든 것의 집합체이다. 참고 인내하며 싫은 것도 해야하며, 감정 상하는 것도 차분히 점검해 조화롭게 이루는 종합 예술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종합예술을 매일 수행한다.
나의 과거의 경험과 아픔과 괴로움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내일도 열심히 환자를 볼 것이다.
지구촌에 소풍 와서 나는 오늘도 보람있고 재미있게 살다가 갈 것이다.

정 규 호

.86년 원광치대 졸
.현) 관악구 한교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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