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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바른 판단

한 젊은이가 나이 서른 둘의 약관에 은행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이 진급은 그의 야망을 훨씬 앞지른 것이어서 그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 많은 이사회의 존경하는 이사장을 만나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은행장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자문을 받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행장 직분을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사장에게 물었습니다.

"바른 판단을 하시오."
이것이 이사장의 간단한 대답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한참 그 답을 생각하고 있더니 말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매우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나요? 제가 어떻게 하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까?"

존경받는 이사장은 대답했습니다.
"경험하십시오."

좀 화가 난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장님, 제가 자문을 구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까? 저는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런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까?"

이사장은 말했습니다.
"틀린 결정을 내리는 것이요."

- 화끈한 예화, 웨인 라이스 -

작성자olive

작성일2002.05.10

이기승

| 200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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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 t2 사고방법

당시 어두운 한국정치 상황속에서 대학가에는 공무원이 된다는 것이 곧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고가 만연하였다. 고시본다는 것은 그러한 하수인이 되는 길로 선택한다는 의미로 되어 비난의 대상으로까지 되었다. 교련수업 자체도 군사정권을 돕는 것이라고 하여 거부운동이 일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고시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면서도 어려웠던 당시 정치상황과 대학생으로서의 의식속에서 조금은 흔들림도 있었다. 그것도 일종의 동류집단압력 (peer group pressure)때문에 생긴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 나름대로 고시보는 것을 정당화하였다.

이때 내가 확립한 가치판단 방법은 가치판단에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방법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의 주요 경로를 결정하여 왔다. 시간을 도입한 가치판단 방법이 나오게 된 것은 내가 고시 시작하면서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은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즉 내 앞에 두가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하나를 A, 다른 하나를 B라고 하자. A와 B를 비교할 때 A가 B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자. 이 때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하여야 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아래서 A를 선택하여야 한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해답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고시를 시작하면서 부딪쳤던 구체적인 경우를 들어보자. 내가 고시를 시작하려고 마음먹던 초기에 A에 해당하였던 것은 민주화에 대한 의식과 노력이었다. 대학생으로서 국민으로서는 당연히 당시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국을 걱정하고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옳을 일이었다. B에 해당하는 일이 고시공부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히 전자(前者)가 후자(後者)보다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덜 중요한 고시를 하여야 하는가. 단순히 나 개인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일까. 이러한 질문에 내 나름대로 명확한 대답을 줄 수 없다면 고시공부를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 된다. 고시를 수행벙법으로 하는 불교탐구가 나에게는 생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구도(求道)의 길이었고 그것은 주관적으로 나에게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평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찾아 낸 것이 가치판단에 있어서 절대적 중요성만으로 비교하지 말고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즉 A가 B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더라도 만약 A를 먼저 하면 나중에 B를 할 수 없으나 B를 먼저 하면 나중에 A도 할 수 있다면 B를 먼저 선택하여야 옳다는 가치판단 방법이다. 나는 이러한 판단방법을 t1 t2 사고방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수식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A B. But A(t1)+O(t2) B(t1)+A(t2)

t1 t2사고방법은 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가치판단의 잘못으로 인한 위험부담을 줄이는 가장 안전한 판단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판단의 잘못이란 우리가 흔하게 겪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어느 시점에서 A가 더 중요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뒤돌아 볼 때 사실은 B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깨닫는 경우가 그것이다. 만약 처음에 A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B를 희생하였다면 나중에 후회하여도 B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B를 하면 나중에 A를 할 수 있으므로 B를 먼저 하게 되면 처음의 가치판단이 잘못되었더라도 나중에 전혀 후회할 일이 없다. 그만큼 위험이 감소하는 셈이다. t1 t2 판단법은 나에게 많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하였다.

우선 고시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관하여도 나름대로 해답이 나왔다. 나는 대학시절 고시를 거부하고 나라걱정만 하면 나중에는 고시하는 시기를 놓쳐 고시합격 못한 채 군대에 가게 되고 그러면 공부가 원점으로 돌아와서 고시를 제대로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우선 고시를 해놓고 나중에 나라걱정을 해도 늦지는 않다고 느꼈다. 나라가 아무리 어지럽거나 엉망이 되더라도 내가 고시하는 몇년 동안에 망하거나 무너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지금 할 일은 고시공부라고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지금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300명씩이나 뽑고 있지만 내가 대학 들어가던 당시에는 불과 몇십명 밖에 뽑지 않을 때였다. 대학 4년동안 고시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졸업전까지 고시를 제대로 붙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위와 같은 판단법을 통하여 고시공부를 정당화한 다음에는 더 이상 정치상황에의 참여라는 문제가 고시하려는 나를 괴롭히지 못하였다.

t1 t2 사고방법은 그뒤에도 내가 부딪친 중요한 문제들 즉 성경을 믿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유학을 가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 사랑을 하여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판사를 하여야 하느냐 유학을 계속하여야 하느냐 등등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쉽게 풀 수 있게 하였다.

내가 고등학교때부터 t1 t2식으로 생각하였더라면 수학공부때문에 속을 썩였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앞으로 인문사회계통으로 나가게 되면 수학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때는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고 수학은 게을리 하였다. 사실 문과쪽에서 사회로 나가면 어려운 수학이 필요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 당시 나에게 중요성에 있어서 영어는 A였고 수학은 B였다. 그래서 수학공부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없었다. 그때 내가 한가지 몰랐던 중요한 사실은 우선 수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대학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효용이나 가치면에서 문과학생(文科學生)에게 수학이 덜 중요할지 모르지만 수학공부를 한 다음에라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2학년 담임이던 김시양 선생님으로부터 수학성적때문에 질책을 받고 난후 수학을 하기 시작하여 6개월후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이 되었다.

그 6개월 동안이 나의 고교생활중 가장 괴로운 기간이었던 것 같다. 우선은 하기 싫거나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먼저 한 다음에라야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사고 그것이 바로 t1 t2 사고방법의 전형적인 경우가 아닌가.

- 고승덕 변호사의 고시합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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