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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990년 된 느티나무

속리산 법주사 형님 절이었다는 공림사에 가서 990년 된 느티나무를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제 고향의 오래된 절이죠.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때 자장선사가 지었다고 합니다.

신라 고려시대를 넘어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불타고 6·25 때 전소되었답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느티나무는 불 타는 절을 두번씩이나 지켜 보았겠지요.
가을에 낙엽을 쓸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스님들의 넉넉한 마음도 함께 만났죠.
불타버린후 새로 지은 아름다운 단청과 기와, 그리고 뒷마당의 부도조차 느티나무의 자태에 비하면 모두가 작위적일 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느티나무 곁에 이끼가 잔뜩 낀 커다란 바위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찌 저런 바위를 안고 웅장한 자태를 지킬 수 있었을까?
느티나무의 넉넉한 마음이 없었다면 바위와 함께 한 1000년의 세월은 없었을 것입니다.
큰 도량이 있었기에 온갖 성쇠 (盛衰)를 지켜보면서 수많은 굴욕의 밤을 견디었으리라.

바위와 느티나무의 만남

마치 동성애라도 나누는 연인처럼, 질박하고 무던한 두 물성이 생명을 끌어안고 세월과 함께 흘러왔습니다.

저들은 천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전란과 그 곳에서 죽어간 비운의 인간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탐욕과 욕망 때문에 허공으로 날려 버린 ‘공림사의 꿈'이 지금도 읽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허망한 일들을 지켜보며 잔가지를 흔들었으리라.

공림사에 숨어 있던 공비를 사살하기 위해 토벌대는 천년고찰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불타는 대웅전을 내려 보던 990살 느티나무의 가슴이 숯덩이처럼 타내려 갔을 것입니다.

느티나무와 포근한 솜이불 같은 이끼바위가 도란도란 지낸 1000년.
그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그저 흩날리는 단풍 낙엽 한 장일 뿐입니다.
애간장을 태우는 사랑도 아픔도 1000년은 곰삭아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되고 이끼 바위가 되는 법인데….

제 몸 하나 순수로 덥히지 못해 아직 단풍으로 흩날리지 못하는 공림사 앞에 선 내 꼬락서니라니….

낙엽을 밟고 낙영산에 내리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천년의 느티나무처럼 될 수는 없을까?

모든 생명을 받아 더 깊어지고 살아 있는 것들을 더 살겹게 쓸어 안아 나 또한 낙엽단풍 한 잎이 될 수는 없을까? 이끼바위가 될 수 없을까?

"나를 흩어 누군가의 발밑에 밟히는 폭신한 낙엽이 되어야지" 마음을 먹어 보는데 한들녁 구름 한 점이 내 어깨 위에 내려 앉아 "힘내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어…" 제 등을 토닥였습니다.

/김영환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8.11.20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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