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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태안 바다의 아픔을 나누며

태안을 다녀올때 마다
마음이 한 없이 무겁지만
계속 가야한다는 것을 안다

TV나 신문에서 보는 태안의 모습은 그저 먼 나라 얘기 같았다. 기름띠로 시꺼멓게 변한 바다가 안타까웠지만 크게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민들의 피해상황을 보면서, 그들의 울부짖음과 좌절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고 가슴이 아팠다. 회사에선 연일 태안 얘기였다. 하지만 연말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무수히 이어지는 자원봉사 행렬에 동참하진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럽단 생각을 뒤로한 채.

그러다 새해를 맞고 시무식을 하면서 또다시 태안이 화두가 되었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비록 직접 가진 못하더라도 도울 수 있을만한 일이 없을까 찾던 중 직원 하나가 '태안 피해어민 돕기 일일호프' 제안을 하게 되었고 모두들 흔쾌히 동의하였다. 우린 발 빠르게 일정을 잡고, 장소 섭외와 준비사항을 체크했다. 준비하면서 설레고 들뜬 마음이었다. 또한 보람 있단 생각이 들었다.

1월 19일 드디어 일일호프 날. 아침부터 시장을 보고, 설치물을 점검하고, 안내문을 붙이고, 예행연습을 했다. 5시 오픈과 함께 이너스 치과병원의 함영석 원장님이 일번으로 도착하셨다. 조짐이 좋았다. 많은 분들이 오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작 시간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때론 병원 직원들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방문해 주셨다. 직원들의 가족과 지인도 참석해 주셨고, 치과 업체 직원 분들, 기자 분들도 좋은 일에 동참하기 위해 일일호프를 찾아주셨다. 분위기도 무르익고 이 테이블과 저 테이블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모르는 분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좋은 일로 인해 다들 마음이 통하셨던 것이었으리라.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오셨던 모든 분들이 돌아가시고 피곤하지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귀가하였다. 이분 저분과 기울인 한잔이 얼굴을 발그레하게 만들고 취기도 오르게 했지만 그 어느 술자리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가장 중요한 입금을 체크해 보았다. 바빠 오지 못하신 몇몇 분이 보내주신 성금과 우리 직원들이 모은 성금까지 합쳐 총 5백40만3000원 이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쉬운 점은 일정을 넉넉히 잡았으면 더 많은 분이 동참하셔서 더 많은 성금을 모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점이었다.

당면 과제는 모아진 성금을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까 하는 것이었다. 피해 상황을 보면서 정부에서 보상의 기준을 찾지 못해 전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맨손 어업 어민이나 상황을 비관해 자살한 분들을 돕고 싶었는데, 찾을 방법이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는 일단 태안에 계신 이재준 치과의 이재준 원장님께 태안 실상을 듣고 성금 전달 방법을 찾기 위해 연락을 드렸다. 우리가 원장님과 나눈 내용은 가히 충격이었다. 태안의 상황은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분배의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펜션이나 횟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피해 정도가 예측되어 보상을 받는 반면, 맨손어업을 하는 어민들은 정확한 소득을 예측할 수 없어 보상이 미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안군 내 이장들이 분배 문제로 모두 일괄 사퇴하는 일이 발생하고, 손가락을 절단해 태안군청에 항의를 하는 가하면,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자가 생기고,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들이 무수히 많다고 하셨다. 생계 지원이 원활치 않으면서 음식쓰레기통을 뒤지는 일까지 발생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긴 한숨을 쉬셨다.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일단 우리는 원장님의 도움으로 신두리 인근의 가장 삶의 환경이 열악하고 결손 가정이 많으며 맨손 어업 어민이 많은, 최초의 자살자가 나온 의항리에 성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 곳 목사님의 도움으로 가구마다 약간의 금액씩 골고루 분배해 드렸다. 여러 가구에 나누다 보니 돌아가는 성금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까웠다. 현지 주민의 말은 완전히 원상복구 되는데 최소한 10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 했다. 도움의 손길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동안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또한 그 동안의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얼마 뒤 우린 다시 의항리를 찾았다. 여전히 버스를 대절해 온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조금만 있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석유 냄새는 계속 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타이레놀을 먹고 작업한다고 했다. 점심시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졌다. 국 대접에 밥과 무국, 김치를 한꺼번에 담아 한 끼를 때우는 것이었다. 매일 그렇게 먹고 작업한다고 했다. 보기도 민망한 점심만찬이었다. 정말 참담한 현실이었다. 우린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돌아왔다.

태안을 다녀올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무겁지만 우린 계속 가야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함께 해쳐나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다 나눌 수는 없지만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모금 활동을 하고 도울 방법을 찾고 자립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우리 치과계도 뜻을 모아 사랑과 격려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석유선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8.08.21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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