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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상, 하)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상)

여자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에 위안을 삼으며


어느 날이었다. 아내로부터 유치원 졸업을 앞둔 아들놈이 유치원에서 하는 페스티벌 행사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하니 시간 좀 내서 같이 해 주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인즉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지역에서는 꽤 크다는 문예회관을 빌려서 모든 학부모들을 모시고 발표회를 한단다. 전체 원생 및 선생님들이 다 참여하여 프로그램도 거의 20개 가까이 되는 큰 행사로, 이 중 유일하게 아이와 아빠가 함께 왈츠를 추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라는 얘기다.

물론 전체 학생이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신청을 받아서 희망자 중 일부만 하는 거란다.
행사 날짜가 애매한 평일 저녁시간이고, 무대 체질도 아닌데다 또 왈츠라는 생소한 단어에 당연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거절하면 아이가 실망할까봐 바빠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대답을 미룬 채 시간을 끌어왔다.

나의 작전이 적중하여 어느덧 신청마감기간이 지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1차 연습까지 끝냈다는 소식을 들을 즈음, 아이의 계속되는 고집스런 투정과 아들의 마지막 유치원 생활을 잘(?) 마무리 해 주려는 엄마의 극성이 의기투합하여 유치원 원장선생님께 사정사정한 끝에 억지로 참여 허락을 얻어내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아내에게 왜 쓸데없는 일을 벌였냐고 핀잔을 해대었지만 소용없는 일. 결국 공연을 3일 앞둔 주말 오후 최종 연습을 위해 아이와 유치원으로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에 도착해보니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빠와 함께 왈츠를'이라는 프로그램은 원래 여자아이들이 아빠와 하는 것이란다. 노래 내용도 그렇고 춤 동작도… 그래서 원장선생님도 아내의 전화에 무척 난감하였지만 워낙 간곡한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생전 처음으로 남자 아이를 무대에 올리는 거란다. 우리로 인하여 이미 자리 배치 및 무대 동선을 다 수정하여 새로 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헉! 이게 웬일!!! 여자아이들만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꼭 하겠다고 나서는 아들놈의 고집이나 또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을 설득시키기는커녕 선생님께 사정하여 허락을 얻어내는 아내의 무대뽀(?) 정신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안 해도 되는 일, 아니 하지 않아야 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마치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뒤늦게나마 아이를 설득해 보았지만 역시 막무가내. 결국, 그나마 여자아이들보다도 더 열심히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에 위안을 삼으며 어쩔 수 없이 약 1시간동안의 연습을 끝냈다.

드디어 공연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아이들 공연이지만 무대위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꽤 긴장이 되었다. 도착하여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한 번의 리허설 후 무대에 섰다.

유일한 남자아이다 보니 아무리 제일 뒤편 구석에 서 있어도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공연 시작. 워낙 가무에 재능이 없는데다 절대적으로 연습량도 부족하니,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어색했으리라….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6.03.09 -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하)

아이와 같이 호흡 맞추고
같이 땀을 흘리면서
아빠로서 감사한 마음이…


그러나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또 한번 느꼈다. 조금 전까지도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짜증과 아내와 아이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공연을 끝낸 후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으로 바뀌더니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연한 아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사실 그동안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소원하였다. 바쁘다는 핑계(사실 정말로 핑계인 것 같다. 오히려 광고회사 다니는 아내보다도 덜 바쁘면서, 의사이니까 또 교수이니까 당연히 바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편승하여 괜히 바쁜척하며, 바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로 아이와 같이 놀아주거나 따뜻하게 챙겨주지는 않고, 오히려 한해 한해 커가면서 늘어나는 말썽과 특히 동생이 생긴 후부터 부쩍 심해진 고집을 꺾고자 거의 매일 혼내는 큰소리와 시시콜콜한 잔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 반성도 해 보지만 다시 아이를 대하면 여지없이 똑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공연을 통하여 아이와 같이 호흡을 맞추고 같이 땀을 흘리면서 아이에게 아빠로서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또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놈이 화만 내는 아빠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고집을 부려가며 여자친구들 틈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하였을까? 또 그러한 아들의 뜻을 돕고자 사리분별이 뻔한 아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였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코끝이 찡해왔다.

앞으로는 정말로 좋은 아빠가 되리라 결심하며 '다이아나 루먼스'의 글을 되새겨본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아이에게 '손들고 서 있어!'라는 호통과 '하지마...!', '그만...!' 하는 잔소리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안 형 준

·94년 연세치대 졸
·연세치대 교수
·(가칭)대한레이저치의학회 총무이사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6.03.13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6.03.08

치의신보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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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이냐 취직이냐
선택의 기로가
또다른 인생의 시작점



한참 되었던 것 같은데, TV프로그램 중에 이휘재 씨가 두 가지 길 중에 한 가지를 택하면 그 선택으로 인해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된다는 포맷의 '인생극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 경우의 결말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중요한 선택의 기로가 나에게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미리 그 선택의 결말을 말한다면, 지금 나는 제대를 앞둔 말년차 군의관이다.

13년 전 학력고사를 보고, 6년의 치대 생활과 국시를 통과하고 보철과 4년, 군의관 대위로 3년을 보냈으니 그때 그 선택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15년전 늦가을이다.
당시의 나는 격동의 91년, 새내기 대학생으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했던 환경공학과 1학년이었다. 사실 공부보다는 친구와 서울에서의 새로운 대학 생활이 더 좋았던 시절이라서 전공과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었다. 2학기 들어 전공 입문을 공부하게 되면서 환경공학이라는 학문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91년에는 두산에서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해서 일반인들의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사건에 못지 않았었다.
원래 고집이 센 편은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이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 가장 친했던 친구와 공부하다가, 잠깐 커피 마시러 나와 앉은 공학관 앞 계단에서 내 이런 엉뚱한 결심을 상담하게 되었고, 그 친구는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면서 맞장구를 치며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당사자야 본인 일이니까 그렇게 쉽게 결정하고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부모님의 황당함은 얼마나 크셨을까? 지금에서야 짐작하는 것이지만, 부모님께서는 그 당시에 정말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기술직 공무원이셔서 밑으로 기술고시 출신 직원들이 많이 계셨다. 그분들을 통해 환경공학이 미래의 학문이라며 회유를 하셨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겨울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후부터 고향에 내려와 대입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입을 위한 학원생활이야 뻔한 모습이니 생략…

치대를 가기 위해 시작했던 재수는 아니었지만, 어찌어찌해서 우여곡절 끝에 선택하게 된 치의예과, 그리고 치대를 가기 위해서 시작된 객지 생활이 올해로 14년째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군 복무를 위해 다시 서울로…

그 동안 치대 생활과 병원 수련, 결혼, 군 입대, 예쁜 우리 딸과의 만남 등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오늘처럼 15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그 때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치과의사로 새로 태어나 살게 되었다. 치과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 환자들과 만나면서 직업적인 행복감, 어려움도 느꼈고, 이제는 어렴풋이 치과의사가 내 천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지금은 제대를 앞둔 군의관으로서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 시점이다. 제대 후, 개원이냐 취직이냐 하는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오래 살아본 경험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수많은 선택상황들의 연속으로, 그때마다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 좋은 일도, 후회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매순간 심사숙고하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
1991년 10월,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2006년 여기 이곳에 지금 이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을까?

김 영 일

·99년 부산치대 졸
·현 공군 서울공항 군의관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6.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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