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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월간 잡지가 된 착한 이웃들

수많은 봉사자들의 모습
사람들의 정성을 담을 수 있는
순수 문예지가 발간되고 있다


행려자, 노숙자의 쉼터 요셉의원에 나아가 치과 진료 봉사를 하게 된 것은 대학 동기인 오수만 선생의 권고를 통한 부르심 때문이었다.

1987년 가을, 신림 시장 안, 후줄그레한 철근 스라브 건물 이층. 벽이 부슬부슬 부스러지는 세멘 블록 위에 수성 페인트 칠로 실내를 하얗게 멋을 낸 요셉의원,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가난한 이를 돌보는 내과 선우경식 원장을 비롯해 치과 김정식·오수만·박철제 선생님 등 여러 착한 이웃들 - 거기에 깍두기처럼 끼워지면서 벌써 17년이 지났다.

신림시장은 가난한 이들의 장터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과 다르게 소박하고 꾸미지 않는 평화가 넘치는 시장. 그 장터 한 가운데 요셉의원은 만 10년 있었다.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 계곡을 흐르는 개천을 낀 신림시장은 시나 수필 같다고 어느 글 쓰는 이는 찬탄했다. 생활의 열기가 넘치는 시장도 시장이지만 지하철 신림역에서 시장에 이르는 길은 젊음과 낭만이 넘친다. 그리고 그곳은 압구정동, 홍대 앞과는 전혀 다른 자유와 젊음이 있다.

가난한 멋이 주는 자유는 뽐내지 않고 주눅들지 않는 평화다. 장미송이, 지갑, 벨트, 오뎅, 구운밤 포장마차 등등 온갖 물건을 거리에 꽉꽉 메우는 노점상의 외치는 소리 웃음소리가 있고 생기 발랄한 젊음이 넘치는 거리 그곳에 10분만 서 있으면 삶의 의욕이 솟는다.

97년 가을 영등포 역전으로 요셉의원을 옮겼다. 소외된 여인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리는 기다림의 골목인 역전마을, 신림동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지만 골목을 들어서면 골목전체가 삶의 삽화처럼 마음에 새겨진다.

요셉의원 정문에 마주보며 붙어 있는 현판 '쪽방 상담소'라는 현판은 마치 설치예술과 같다.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쪽방이 노숙인들에게는 궁전처럼 사치스럽지만 베들레헴의 외양간 말구유처럼 가난한 곳이다. 이 골목은 많은 소외이웃의 기다림이 있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평소 이방인으로 경원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출해 착한 이웃에 됐다는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30년 돌보는 '칼라' 이탈리아 수녀님이 있기 때문이다.

칼라 수녀님은 소외된 여인들이 낳은 아기를 이곳 10평 남짓 이층방에서 길러준다. 엄마의 마음은 비록 아빠가 누군지 몰라도 자신이 낳은 아기가 양지를 향해 살기를 염원한다. 36명의 사생아를 친자식처럼 일일이 도시락을 싸서 학교로 보내는 칼라 수녀님의 모습이 커 보이는 것은 6척이 넘는 그 큰 키 때문만은 아니다. 2층 그 좁은 방에 36명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찜통 더위 속에 그 크신 체구로 새우잠을 주무시는 수녀님. 이번에 안식년으로 이탈리아 본원 수녀원으로 가시고 본원에서 다른 수녀님이 오신다.

2000년 봄 요셉의원 봉사자 소풍, 봉사자가 약 400명인 요셉의원의 소풍은 식구가 많아도 마음이 하나이기에 단출하다. 이 자리에 50년 지기, 시인이며 소설가 이동진 전직대사와 10년 지기인 소설가 유홍종 선생, 시인 한광구 교수가 함께 자리를 했었다. 자연스럽게 문인들이 할 수 있는 봉사방법이 논의됐고, 수많은 봉사자들의 모습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을 담을 수 있는 순수 문예지를 월간으로 내기를 합의했다.

제 아무리 원고료가 비싼 작가일지라도 '월간 착한이웃'에는 원고료가 없다. 수익금 전액을 요셉의원 운영비에 보태기 위함이다. 연인원 30만명을 치료한 요셉의원은 개안 수술에서 콩팥이식 수술까지 치과는 보철까지 시술을 해주기 위해 막대한 유지비가 들기에 수익금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지만 '과부의 동전'과 같은 정성으로 잡지를 창간했다.

연간 구독료 2만원으로, 금년 5월 창간, 현재 9월 호까지 순조롭게 간행 중이다. 특히 영등포구 치과의사회 전임 김원식 회장·현임 박영채 회장의 후원과 따듯한 동료 정신으로 85%의 영등포구 회원이 자원 정기구독 중이며, 라윤영 회장님의 서울 가톨릭 치과의사회 회원 중 월례모임 정규 멤버가 100% 구독.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린다.

착한 이웃은 가톨릭 잡지가 아니다. 필진도 스님, 목사님 등 고르게 집필해 주심으로 종교 종파를 초월해 온 나라 사람들이 같은 마음, '착한이웃'이 되도록 기원하는 잡지다.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06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3.10.14

치의신보

| 200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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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환자에게 지쳐
풀어지지않던 심장근육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작년 11월초 아내가 구입한 난초가 아파트 베란다에 놓여져 있었다
난초는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내가 돌볼 것도 아니면서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소식도 없이 꽃을 피워 향기를 조용히 날릴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아주 가끔씩 느슨한 눈빛으로 홀로 앉아 있는 난초를 바라보았다.

올 여름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늦은 출근길을 서두르다가 무심코 바라 본 난초는 이미 정갈하고 소담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순간 향기로운 구름 한 점이 솜사탕처럼 입술을 달콤하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로운 환자에게 지쳐 풀어지지 않던 심장근육이 부드러워 졌으며 동시에 내 코를 즐겁게 해주는 난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조심스럽게 난초를 돌보았을 아내의 어깨를 스트레스를 풀 겸 세게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을 하려는데 아내는 난초에 감동한 똥그란 내 눈을 보며 자꾸만 웃는 것이었다.

"여보, 난초가 조화라는 것을 몰랐어요"

순간 나는 이게 정말 무슨 조화인지 몰라 멍해졌으며 머릿속에 곱게 저장됐던 난초의 향기는 콧물과 함께 뒤죽박죽돼 버렸다.

그럼 내가 콧구멍을 활짝 열고 맡은 은은한 향은 무엇이었으며, 꽃 없던 난초는 하늘에서 누군가가 던져 주셨다는 말인가?
유홍준님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관심을 가지는 만큼 정확하게 보인다는 말도 포함돼야 한다.
따라서 나도 이제부터는 머리가 아프더라도 적당히란 말보다는 정확하게 보고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그러다가 쓸데없는 일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관심을 가지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내몰려 동네 정신과 선생님과 돈을 줘가며 친해질까 사실 겁이 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드릴 것은 두가지인데 첫 번째 치의학 전문대학원 문제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폐지됐으면 한다.

선진국은 하나의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 짧게는 십 수 년을 연구한다고 하는데 갑자기 시행된 제도로 인해 정말 똑똑하고 실력 있는 이공계생들이 자신의 길을 버리고 고시아닌 고시에 매달려 청춘을 소모해서는 안된다.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수 있도록 국가관을 심어주고 그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은 수의 애국자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많은 수의 애국자는 국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과학입국이라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글이 생각난다.

두번째 이야기 드릴 것은 95년 출장 구강검진이 생길 때부터 검진을 하며 느낀 것은 아직도 대부분 선생님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성 없는 수가체계와 행정상의 문제이겠지만 국민의 구강건강을 위하고 치과계의 발전(부치신문 322호 사설참조)을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 얽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국민의 구강검진발전을 위해서 치과위생사협회에 우리가 줄 것은 주고 우리가 받을 것(인력문제와 관련법규)은 받으며 함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내가 아는 만큼 보고 관심을 가지는 만큼 정확하게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09 -

치의신보

| 200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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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이 생생
예과 2학년 첫 수업시간
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
어언 세월,


우리나이 50대 후반, 치과계에 30년 그리고 입학과 더불어 40년, 이제는 히끗히끗 머리가 약간씩 빠지고 슬쩍 나온 배에 둥굴둥굴한 턱, 거의 외모 평준화된 모습들이지만 어디서라도 만나면 왜그리 반갑고 사랑스럽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여학생이라고 뭐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6년간을 한 교실에 묶어둔 가족 같은 유대감을 주는 것도 같고요, 개업가 전장에서의 동지애 그건 것도 있을거 같아요….

우리 여학생들은 "여자가 시집이나 잘가서 편히 살 것이지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고!"하는 소리를 기본으로 들어야 하는 풍토에서 눈치 공부하던 불쌍하다면 정말 불쌍한 세대입니다. 그저 대우 받는다면 시험기간 노트 빌려 달랄 때 정도... 미팅이나 한다치면 완전 찬밥신세, 음료수 판매나 시키고 정말 너무들 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나면 한없이 반갑기만 해요. 적어도 학부 시절에는 제가 가장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왜냐구요? 저는 목숨 걸고 치의예과에 전과를 해 온 사람이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저야 청운의 꿈을 안고 초긴장 상태로 등교한 예과 2학년 첫 수업 시간, 주위를 둘러보니 의외로 군기가 빠진 느낌은 아니였지만 자신들이 치과의사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그런 표정과 말투…. 이렇게 태도에서 천지차이가 나는데 시험 답안지에서 차별화가 안나면 세상 불공평한거죠. 맞죠?

예과를 마치고 소공동 본과로 가보니 웬걸 선배님들은 다들 제비님들 같으시고 무슨 다방에 무슨 마담 운운하며 완전 명동파들 이였죠. 내눈에 그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멋있어 보이는 분은 2년 선배인 지금의 내 남편. 웃지 마세요. 착각은 자유이고 무죄라면서요.

본과 1,2학년 내내 재시 삼시와의 전쟁을 치루고 원남동 새 병원에서 원내생 생활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치과의사 기분이 났었죠.

원내생때는 오빠 동기분들이 엄청 두각을 나타내시는게 인상적이였구요. 그렇잖아요. 공부 잘한다고 실습 잘하는거 아니고 실습 잘한다고 개업 잘하는 거 아니라는 것을….

저는 성미 급한 남편 덕분에 본과 3학년때 전격적인 결혼을 해 주위 사람들에게 가히 충격이었죠. 따가운 눈총과 시선 엄청 받았습니다.

어찌됐던 그 결과, 후배 여학생들의 평균 결혼 연령을 낮추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죠.

치대 기마다 특징이 있다는데 우리 동기들은 조용한게 특징이죠. 요란하게 튀는 기도 많더구만 우리 동기들은 일찍이 해탈들을 하셨는지 하나같이 감투라면 질색들을 하시더만요. 그것이 약간 불만스러울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예요. 투박한 질그릇처럼 순박한 우리 동기들이 순수하고 너무 좋아요.

그거 생각나세요?
본과 4학년 총대 선거 하던 날 다들 사양하는 바람에 결석한 사람을 당선시켜 그 사람이 그야말로 총대 메고 총대 했잖아요. 졸업후 잠시 뿔뿔히 헤어졌지만 공직 몇사람만 빼고는 다시 개업가로 모여 30년이 되었네요.

'은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시기가 된거 같아요. 저는요 결론부터 얘기 할께요 "내 사전에 은퇴는 없다. 내가 건강하고 나를 찾는 환자가 있는 한 단,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쉬엄 쉬엄 한다" 지독하죠?

저도요 소시적에는 환자 보는게 지겹고 언제 그만두나 그런 생각만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요 요 몇 년간에는 멀리 멀리 여행이라도 갔다 돌아오면 내가 있는 자리가 새삼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데요. 가장 편하고 보람 있는 자리 라고요.

별로 동의들을 안하시네요. 신기한 것은 여자 선생님들은 동네에 가서 '은퇴'라는 말 들어 본적이 없어요. 오히려 남자 후배들한테서 더 들어요. 이 이유를 저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았는데 필수와 선택의 차이가 아닐런지요…. 그리고, 여자들은 질기답니다.

동기님들!
마나님한테 잘들 하세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인생은 50부터라는 말도 있다는데, 저로서는 상당히 실감하고 있어요. 우선, 자식에 대한 의무기간이 끝나고 지금부터는 베푸는 기간, 그리고 이 시대에 와서 직장여성에 대한 친이해적인 시각, 또한 애를 넷씩이나 낳은 나를 오늘날 황송하게도 훌륭하다고까지 해주는 것. 정말 살 맛 나는 일이죠. 애 넷을 가질때마다 매번 그리도 창피해서 가운속에 꼭꼭 숨기고 다녔던 것이 내 반 평생 가장 억울한 일 중의 하나지요.

직장 다니는 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가족한테 미안했고 힘들다는 소리는 그만두라 할까 봐 절대 못했지요. 언제나 즐거운 양 했지요.

얼마나 표정관리를 잘 했으면 딸 셋이 전부 치과의사 되고 싶다고 했겠어요? 치과의사 딸을 둔 우리 남편이 사위 불러 앉히고 외조 잘하라는 훈계아닌 훈계라도 할라치면 나는 "me too!"라고만 해도 인생 두 번 사는 것 같다니까요.

환자 보는 것도요 많이 편해졌어요. 개업초기에 여자라는 핸디캡과 너무 젊다는 약점 때문에 뭇 환자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탐색전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아~니죠.

동기님들!
제가 너무 긍정적 사고방식의 티를 내고 있어서 얄밉지는 않나요.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구세대라는 것, 그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인터넷 시대에 그리고 치과경영 면에서 컴맹이 될 수밖에 없고 네티즌을 생활화 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세대, 치과 이름도 "김○○ 치과"하면 벌써 구식이랍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어요.
"궂은 비 내라는 날, 낭만에 대하여" 하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그런 마음으로 나를 찾아 오는 환자라 생각하고..... 숫자가 줄면 어때요?
그 환자들과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진료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강 민 선

·73년 서울치대 졸
·현) 서울 송파 한일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13 -

치의신보

| 200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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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꽉 짜여진 틀
완벽히 들어찬 것
그런 것들은 병적으로 싫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창을 통해 눈부실 정도의 파아란 하늘에 깔끔하게 떠있는 하얀 구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 정말 예쁘다" 라는 탄성을 지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백"을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요.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잠시 들어 가다보니, 대부분의 저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여백이 관련돼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들고 무슨 대단한 답이나 열쇠라도 발견한 기분이 됐습니다.

우선 저는 여백이 많이 있는 그림을 좋아 합니다. 제가 만일 화가가 됐다면, 아마도 제 캔버스의 3분의 2이상은 늘 그저 여백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에 넣을 그럴듯한 그림을 구상하느라 머리를 쥐어 짰을 겁니다. 빡빡하게 들어차 있는 그림보다는 헐렁하게 들어차서 가다가 시선이 한 두군데 쯤에서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그림이 좋습니다. 하얗게 남겨진 부분이 많아 보는 이가 부득이 상상으로 채워 내야하는 그런 그림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한마디의 글을 올리더라도 앞뒤로 엔터키를 사정없이 쳐서 여백을 주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스케줄도 그렇습니다. 숨막히게 빡빡하게 잡아 놓은 것은 아예 감당을 하지 못합니다.
환자 스케줄도 그렇고 무슨 약속 시간도 그렇고 일단은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안심이 됩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많으면 어떻게 약속을 잡아서 저러지 하며 짜증이 먼저 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쉼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나라도 더 가치 창출을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부지런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해서, 하루 중 한숨 돌리고, 쉴 수 있는 여백들이 이제는 거의 고정적으로 곳곳에 미리 구비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침에 모든 식구들을 내보내고, 출근하기 전까지 아무 방해 없이 음악도 듣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매우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는 혼자만의 그 시간은 제가 가장 아끼는 하루의 여백입니다.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저는 아마도 나머지 시간들을 보낼 때 많이 힘들어 할 것입니다.

학창시절 늘 제일 먼저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이었는데, 그 이유는 단하나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를 타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헐렁한 버스를 타고 싶어서요.
아직 아무도 열지 않은 새벽안개 자욱한 자갈 숲길을 걸어 들어가며, 킁킁 대며 안개 냄새를 맡고 사색을 즐기는 그 시간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이제는 내 삶의 여백으로 영원히 남을 순간들 이지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창문을 하나씩 열면서 밤새 매캐해진 교실 공기를 상큼한 아침공기로 바꿔놓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건 여백을 사랑하는 덕에 덤으로 누리는 행운 이었구요.
같은 맥락에선지, 사람을 만나도 생김새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미남미녀는 싫습니다.
뭔가 하나 부족한 곳을 가진 - 아마도 그게 제겐 여백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 그런 얼굴, 어딘가가 서운한 그런 몸매가 더 예뻐 보입니다.

헤어스타일도 유행에 딱 맞춰 찍어 내듯이 하는 것, 화장도 공식에 맞춰서 완벽하게 하는 것, 옷도 딱 떨어지게 완벽한 코디를 하는 것은 정말 싫습니다. 약간 허술하고, 아마추어 냄새가 나고, 여백이 있는 실루엣이 좋습니다. 액세서리도 가끔 귀, 목, 손에 다 걸쳤다가도 왠지 어색해서 꼭 하나쯤 빼어버리게 됩니다. 머리도 어쩌다 미용실에서 손질을 하게 되면 왠지 부자연스러워서 손가락을 집어 넣어서 흐트러 놓게 됩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모임 같은 것에도 출석률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왠지 한두개 쯤, 한두번 쯤 펑크를 내야지 나머지가 잘 굴러갑니다. 10번 나가야 하는 세미나에도 무슨 일이 있을때 핑계삼아 한번쯤은 빠져줘야 나머지 시간에 더 충실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저라는 사람에게 있어 여백은 단순히 휴식, 재충전의 의미 이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분명, 나머지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 같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글을 쓰고 나서 손질하는 일은 거의 지우는 일입니다.
남이 하고 싶은 말, 사고 까지 앞서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남의 눈에 비칠 내 글의 여백에 신경이 쓰여서입니다.^^

암튼, 무언가 꽉 짜여진 틀, 완벽히 들어찬 것, 옭아 매어지는 것, 그런것들이 병적으로 싫습니다. 그래서 이정도 밖에는 못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도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저도 저를 어떻게 할 수가 없기도 해서 그저 포기하고 삽니다.

그렇다고, 엔도를 할때 치근 끝에 일부러 여백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안 만들려고 안간힘을 씀에도 그 모양으로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안 희

·87년 전남치대 졸
·현) 이안희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16 -

치의신보

| 200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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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된 사랑니를 빼면서
갖혀있는 자들의 고통과
연민·사랑을 키워간다…



사랑니의 출옥


가둔 자는
갇힌 자의 마음속에
오래 오래 갇혀있다

붉은 창살 속에서 몸부림치던 이십 년
사방에서 목을 조르고 팽창한 경동맥 위로
퉁퉁 부은 얼굴
누르면 누를수록 솟아 오르고 싶은 욕망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기다릴 때
반가운 얼굴이 되어 돌아온다
갖혀 있고 묶여 있는 이 몸둥아리
내일 올지도 모를 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소망으로 하루를 끌어 안는다.

아침에 들어오는 창살 위에 걸린 햇살
흰 이마 위에 부딪는다.
목이 꺾이고 몸이 찢기고
두 다리가 저리도록
흔들고픈
젊음의 춤


많은 환자들이 사랑니로 고생하면서 치과에 내원한다. 환자에 따라 사랑니에 대한 애착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어떤이는 사랑니를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고수하려고 하고, 어떤이는 멸종시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랑니의 치료도 치과의사에 따라 견해가 사뭇 다르다. 환자가 어리둥절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같은 사랑니에 대해서도 어느 치과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느 치과에서는 빼는 것이 좋다고 했다면서 우리 치과에 와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나의 사랑니에 대한 철학을 알고 싶어한다.

환자의 입안을 남몰래(?) 여기 저기 살피다 보면 사랑니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사랑니는 왜 나는 것일까? 사랑니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가? 만약 꼭 필요한 치아라면 어떤 기능이 주된 기능일까? 어떤 사람은 사랑니가 있고 어떤 이는 사랑니가 없다. 또 사랑니가 있는 사람 중에도 모두 다 있거나 한 두 개가 없거나 한다. 사랑니의 존재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진화론자들에게 사랑니는 퇴화되는 기관이지만, 창조론자들에게는 제1대구치, 제2대구치, 그리고 제3대구치의 시간차에 따른 맹출과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치아로서 생각된다.

또 동양인에게는 '사랑니'로 불리우고, 서양인에게는 '지혜의 치아(wisdom tooth)'로 일컫는다. 우리에게는 사랑을 알 만큼 철이 들데 나오는 치아라 사랑니라고 불리우는 것 같고, 그네들에게는 사고의 깊이에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나이에 맹출하는 치아라 해서 '지혜의 치아'라고 하지 않았나 가볍게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어쨌든 사랑니에 대한 이해와 철학은 문화와 민족에 따라 매우 다르게 표현되리라 생각된다.
사랑니의 발치는 사랑니의 다양한 모양과 위치로 인해 어려움을 줄 때가 많다. 특히 뿌리가 만곡된 수평지치가 하치조 신경에 가깝게 위치하면서 제2대구치의 원심면에 걸려있는 상태로 매복돼 있을 때, 그 환자의 성격까지 의심하면서 약간 긴장하며 이를 빼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랑니를 뺄 때마다 어떤 희열과 해방감을 느끼면서 환자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똑바로 나와 보려고 투쟁했던 흔적들, 앞 치아를 얼싸안고 함께 썩어가는 아픔, 얇은 뼈도 뚫지 못하고 갖혀 허우적 거리는 두 다리, 맨 구석에 있어 잘 닦이지도 않고 늘 구석지고 축축한 곳에서 계란썩는 냄새를 맡아야 하는 초라한 모습, 환한 웃음 한번 웃어보지 못하고 또 제대로 씹어보지도 못하고 치아지만 치아로서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치아같지 않은 치아, 그런 사랑니를 출옥시키면서 갖는 자그마한 기쁨은 바로 이런 환경에 처한 이웃과 이런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이해에 한 발작이라도 나아가려는 몸부림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우즈벡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치과라는 섬김의 도구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너무나 열악한 환경과 영적인 억압 속에 갖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이들이 바로 사랑이 필요한 감옥에 갖혀 사랑니들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이나 이웃들이나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더 나아가 땅 끝에서 오늘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하루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이들 가운데, 외적인 환경이나 내적인 아픔 등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상처입은 사랑니들을 그곳으로부터 출옥시키는 희망의 도우미가 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매복된 사랑니를 빼면서 갖혀 있는 자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내 마음 속에 키워간다.


조 종 만

·85년 경희치대 졸
·현) 서울 송파 베스필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20 -

치의신보

| 200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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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주문메뉴는
프림 뺀 냉커피이고
특별한 경우 아니면 꼭 참석


다방 개근상7년 전 필자가 이 곳 숯뱅이 마을(대전시 서구 탄방동)에 개업할 때만 해도, 우리 집(치과) 주변에는 치과가 둘 뿐이었다.

대전에서 가장 큰 두 신작로 중에서 계룡로라는 큰 길가이기는 하지만 뒤 쪽으로는 약간의 전자상가와 몇몇 음식점들, 그리고 지은 지 오래 된 작은 주공아파트단지가 있고, 앞 쪽 길 건너로는 술집들과 여관촌 밖에 없어서 잘되는(?) 치과가 들어서기에는 조건이 아주 좋지 않았다.

고향이 대전이 아니라서 지리에 어두웠고, 그저 대로변에 잘 보이는 위치라는 것만을 기준으로 떡하니 개업을 해버리고는 처음 나간 대학 동문회에서 많이도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선배들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어찌 그리 엄한데다 자리를 잡았냐고…. 그래서, 주변에는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이 귀해서 대부분의 점심식사는 2~3명의 직원들과 함께 했었다.

그러던 몇 년 후, 길 건너에 백화점의 왕인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약간(아주 조금) 활성화되고 점심밥 같이 먹을 동네 동료들이 드디어 생기게 됐다. 주변에 치과의원이 5개가 더 늘었고, 서청회(대전지역 서울치대 청년동문회의 약자인 데, 실제로 청년은 거의 없다)의 주류(酒類)인 종수형과 영진형도 공동개원을 하면서 우리동네로 이전해 오셨다. 자연히 우리는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됐고, 나는 점심시간 마다 신이나서 우리동네 맛집들을 하나 둘씩 소개하며 외로운(?) 점심시간들과 작별하게 됐다.

필자 역시 주류(酒類)인 관계로 메뉴의 절반 이상은 해장에 좋은 음식들이다. 신협직원, 보험사직원, 치과기공소장님, 책아저씨, 재료상 등등 숱한 사람들이 점심사냥꾼의 희생양이 됐지만 이들 역시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이었다. 셋으로 시작된 우리의 점심모임이 지금은 매일매일 회식 수준의 규모가 됐다.

중구지역에 개업한 어린(?)후배 태평원장, 화이트원장과 우리 앞집의 한길원장이 합류하면서 우리들의 점심모임은 기본적으로 다섯 명이 식사하는 거대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정겨운 점심식사 후에 우리들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다방이다. 주문 메뉴는 사시사철 프림 뺀 냉커피이고,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개근한다.

전국다방협회에서 개근상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메뉴가 냉커피로 고정된 사연 또한 우리들이 주류라는 데에 기인한다. 속을 풀자니 자극적이고 매운 해장음식을 자주 먹게 되고, 땀 흘리며 먹다 보니 다시 시원한 것을 먹고 싶어지게 마련. 어쨌거나, 다방에 앉으면 오전에 어떤 환자는 엉뚱하다느니, 진료 받을 자세가 안 돼 있다느니 하는 환자성토에서부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직원에 대한 불만 토로도 이어진다.

세상사이야기 정치이야기는 기본이고, 재료이야기나 특이한 진료테크닉과 꽁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게 되며, 진료철학에 관계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환자의 불편과 고통을 내원시점에서 차단해주는 것을 목표로 기본에 충실한 성의 가득한 진료를 하자는 것이 우리 점심 모임 멤버들의 공통된 진료철학이 됐다.

덕분에 우리는 불치의 병을 얻게 됐는데, 바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병이다.
시대나 환자 개개인의 여건에 따라 기본에 충실한 진료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원장 몇 년 해 보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턱없이 이해불가한 진료를 해 놓는 치과의사가 간혹 우리 멤버의 입에 오르내리며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다.

타성에 젖어서 일상진료를 해 가다가도 문득 놀라며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함은 물론이다.

가족같이 애틋한 우리 점심 식구들! 오늘도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또 냉커피를 마시기 위해 출근한다. 오전진료 일찍 마친 원장님들! 한 번 놀러 오세요! '이 환자 빨리 보고 밥 먹으러 가야지…'

이봉호

.90년 서울치대 졸
.현)대전 엘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3.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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