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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냉정하고 진지한 성찰을 갈망하며

왜곡된 것을 과장하고
과학적 사실조차 눈감는
언론의 선정주의에 아연

요즘 소독 문제 때문에 치과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PD수첩에서 나온 방송 때문이다. 치과의사들이 진료를 할 때 손과 마스크를 제대로 소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나는 1998년도에 처음으로 한센병 환자 정착촌에 병원 직원들과 함께 진료를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초여름의 싫지 않을 정도의 더위가 느껴지는 때였던 것 같다. 한센 정착촌에 기거하는 환우들이 치과 진료 시 일반인들의 시선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러워서 치과 치료 특히 보철 치료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봉사 활동차 군단위에 있는 정착촌을 처음 찾게 되었다. 두 달에 걸쳐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센인들의 치아 상태 등을 파악한 후 치료 계획을 세웠다. 그분들의 나이도 나이지만 단기간의 방문만으로 치료를 마칠 수 없을 정도로 치아상태도 좋지 않았다. 나는 최소한 식사만은 잘 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먹는 즐거움도 즐거움이려니와 최소한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음식 섭취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마을 회관의 딱딱한 의자에서 몇 개의 왕진용 가방에 준비해 간 도구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진료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회관에 작은 치과병원을 마련할 마음으로 유니트 체어와 콤푸레셔 등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보철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 곳에 함께 간 우리 병원 위생사들의 첫 마디는 전염되지나 않을까, 그 사람들에게서 해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섞인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진료를 위하여 가지고 가는 기구는 모두 소독이 되어 있을지라도 주민들과 접촉하다 보면 전염이 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사회적인 인식의 부족으로 인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던 모양이다. 정착촌에 기거하는 분들은 모두가 완치되어 정상 생활을 한다고 안심을 시켜 주어도 몹시 내켜하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한센병에 대한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는 뿌리 깊은 두려움을 일반인보다도 훨씬 감염에 대한 지식이 있을 위생사들마저도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원장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무작정 위생사들이 참여하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사전에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그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재차 전염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가면서 그들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맨손으로 진료를 하였다. 환자들과의 거리를 줄여주는 효과와 함께 인간관계에 있어서 신체 접촉에 의한 친밀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치료를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위생사들도 점점 스스럼없이 한센 환우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던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정착촌에서 맨손으로 진료하면서 주민들과 자연스런 신체 접촉으로 더욱 친근해지고 인간적인 거리가 가까워졌던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몇 년이 지나서 지금도 병원에 방문하시는 정착촌 어른들이 계시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맨손으로 진료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병원 직원 누구도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이나 막연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다른 환자와 똑같이 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선입견이 우리의 인간성과 아름다운 삶을 허탈하고 무의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한편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있는 어느 환자분도 그분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에 항의를 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는다. 고마우면서도 한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더없이 다행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잘못된 선입견이나 성급한 결론이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이번 PD수첩을 보면서 실제와 너무나도 다른 내용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것을 전부인 것처럼 과장하고 호도하는 모습에서 관념에 사로잡혀 과학적 사실조차도 눈감아 버리는 무지에 두려움마저 들었다.

우리 사회가 격동의 20세기를 경험한 탓인지 어지간히 충격적인 것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언론이 잘못된 점을 고발하는 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객관성과 과학성을 결여한 폭로 또한 지양되어야 한다. 시청률에 발목이 잡힌 상업적인 언론은 이미 사회의 공기(公器)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한탕주의를 공공 언론에서 보여준 것에, 그리하여 우리 국민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어 버린 사건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봉사 활동을 해도 무슨 좋지 못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에 이번의 소독불량문제로 우리 치과의사들이 무슨 돈벌레나 되는 양 비쳐지는 것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우려스럽다. 치과의 소독이 문제가 전혀 없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과의사들이 그렇게 돈 때문에 의도적으로 저지른 범죄자인 양 낙인찍는 내용을 보고, 충격적인 것에 목말라 하는 일부 시민들에게 아부하는 언론의 선정주의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재곤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6.06.08 -

작성자치의신보

작성일200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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