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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어느 가을 오후의 상념

설레는 맘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은 것이 엊그제 인데, 어느새 그 계절마저 깊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저리도 질서정연하게 매순간을 살아내고 있는데, 그 안의 나는 아직도 미혹을 헤매며 쓸데없는 집착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싶어 하찮은 길가의 은행나무 한그루에도 부러운 시선이 갑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후회스럽고 아프게 느껴지는 일은, 떠나야할 때, 포기해야 할 때 과감히 돌아서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늘 적당한 때 와서 보기 좋게 머물다 딱 알맞은 때에 미련 없이 떠날 줄 아는 자연의 섭리가 유난히 맘에 와 닿는 요즈음이라선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머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또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행히 별 탈이 없이 더불어 그럭저럭 살게 되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때론 어떤 이유로 可不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곤혹스러운 순간에 더러 직면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혹은 어떤 일에 대해 절망이나 회의를 느끼거나, 이건 옳은 길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조차도 인간적인 욕망, 유혹, 혹은 욕심 때문에 쉽게 자신을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아니다.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섰을 때 지금 까지 왔던 길을 포기하고 과감히 돌아 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산악인 허영호씨의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에게 패배의 쓴 잔을 안겨주었던 로체샬(8,400m)등반 때의 이야기입니다. 로체샬 단독 등반에서 그는 정상 바로 밑 100m 지점까지 성공을 했습니다. 허영호씨 같은 이에게 100m라는 거리는 어떻게라도 마음만 먹으면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식은 죽 먹기의 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정상 아래서 돌아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영웅이 되는 길을 뿌리치고 패배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했지만 나의 몸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생각은 정상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내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있었다. 정상까지 올라갈 자신은 있었다.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내려오는 것, 그것은 자신이 서지 않았다. 등산이라는 것이 정상에 오르는 순간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산의 정상은 겨우 목표의 절반에 위치한 반환점에 불과한 것을.."

이 글을 접했을 때 '이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나 같은 凡人은 이를 악물고라도 기어이 정상까지 올라가서 결국은 돌아오지 못하고 마는 만용을 저질렀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하는 그분의 마음이 어땠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과감하게 돌아 설 수 있었던 그 용기는 득도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 힘들게 올랐던 것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지, 혹은 정상정복이라는 커다란 욕망 앞에서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모든 이에게 영웅이 될 수 있는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면 아마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것은 용기가 아니고, 만용을 넘어선, 파멸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늘 눈앞의 욕망이나, 그럴듯한 유혹들을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나약합니다. 그래서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번번이 무너지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눈 앞의 만족을 위해 몇 십년후, 몇 년후, 아니 당장 가까운 미래의 불 보듯 뻔한 불행을 일부러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닌 듯합니다.
우리가 누렸던 일의 댓가를 책임져야할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영원한 승자도 지위도 건강도 쾌락도 그 어떤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인생은 우리가 바라는 욕심을 이루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던 그 자리로 반드시 下山을 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께서 한결같이 "잘 살아야한다"는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반평생을 갓 넘긴 애숭이의 눈에도 무엇인가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그 것은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갔을 때 치루어 내야할 댓가들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우리가 계속 나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 뼈를 깍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과감히 돌아서야 할 것인가를 판단할 때 언제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아름다움일 것 같습니다.
다소 막연해 보이긴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그 무엇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순간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기꺼이 向해야 할 것은 아름다움 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 상처를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상하게 되고 또한 어떤 식으로든 그 댓가를 치루어 내어야 하기 때문 일겁니다.

원장실 창 밖으로 욕심 한 점 섞이지 않은 솜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구름이 파란 하늘을 한가로이 건너가고 있습니다.

문득, 자기 맘 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흘러가도 결코 도를 넘지 않는 기막힌 자연스러움의 비결을 지닌 저 구름이 부러워지며 한 수 배우고 싶어집니다.

다소 무거운 생각에 마음이 잠시 심란해졌지만, 귀를 기울이니 여기저기서 가을 깊어가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는 정말 행복한 오후입니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닌듯…

이안희

.87년 전남치대 졸
.현)광주 이안희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4.11.01 -

작성자이안희

작성일2004.11.02

이상홍

| 200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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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왼쪽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말을 듣고도 건강검진 한번…


원장님 전화왔는데요. 신문사라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아~! 그 나의 첫 피붙이였던 앙팡요. 그게...몇 년 전인가?... 20일까지요?
예. 나의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단순해서 노력해도 안되면 미리 연락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다. 나의 요즘 생활이 다람쥐 체바퀴 돌 듯 했다.(몇 년 전부터 건강상 이유로 술과 담배 일절안함) 오로지 치과 일, 애들과 놀아주고 일요일엔 교회, 신기(神氣)있고 독심술 있는 아내로부터 정신교육과 더불어 세뇌교육, 수족관(해수어, 담수어)과 온실수목관리... 이 모든 것이 일주일 단위, 짧게는 하루 단위로 반복된다. 나에게 이런 지루한(?) 안정된 생활패턴이 온 게 언제였나... 1 년 전(?)... 단조롭다고 말을 내 뱉고나니 두 달 전 그러니까 7월 31일 장인어른이 세상을 뜨셨다.

나는 차남, 아내는 막내인데 집사람이 일을 하게 되면서 장모님(위생관념이 강하시고 술, 담배하는 남자를 너무너무 싫어 하시는)이 우리 아이를 책임지시는 바람에 장인어른도 우리가 5년전부터 부산에서 이리로 모시게 되었다.

당신께서는 말기 폐암으로 손 쓸 틈 없이 진단 후 2개월 만에 우리식구들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왼쪽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말을 듣고서도 건강검진 한 번 직접 챙겨드리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 화근이자 우리 부부를 죄책감이라는 단어속에 가둬 버렸다.

나로서는, 아내도 마찬가지이지만 부모님 네 분 중 처음으로 돌아가시는 것이어서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인생과 자식과 부부의 의미, 삶과 죽음을 다시 새삼 생각하게하는 계기가 되었고 천붕지통(天崩之痛)이 무엇인지도 아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가슴 깊숙히 각인되게 되었다.

장례는 3일장을 치르고 화장을 했다. 집사람은 거의 매일 시한부 삶을 사신 장인어른을 찾아뵙고 집으로 와서는 좋아하지 않는 술을 만취할 정도로 먹고서야 잠이 들었다. 이번 일을 치르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두 장면이 있다. 아마도 나의 장인어른에 대한 추억이 숨쉬는 동안에는 나를 삶의 한 부분에서 계속 묶어 둘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장인어른이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에 치과에서 틀니를 재제작 중에 있었고 그 완성된 틀니를 막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르고 핏기없는 입에 직접 맞추어 넣어주는 아내의 모습, 또 화장장에서 당신의 관이 소각되기 위해 자동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냉정을 유지하시던 장모님이 다른 사람은 모르시게 손을 살짝 들고 마지막 이별의 의미로 손 흔드시는 모습...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더 안타까운 것은 못난, 사위 때문에 타향에서 아들 품이 아닌 딸(그러나 가장 사랑한 자식) 품에서 돌아가시게 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서 당신의 순진무구한 어린 모습을 이제야 봅니다. 장인어른..

.

치의신보 윤XX 기자입니다. 6~7년전에 "나의사랑 나의앙팡"이라는 글 쓰신 원장님 맞으시죠. 치의신보 전에 것 보다가 연락 드렸습니다. 앙팡 강아지 이야기 맞으시죠. 원고 부탁합니다. 날짜를 정해 주시죠.

윤기자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가 정리되고 불필요한 미련,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상홍

.94년 부산치대 졸
.현)경남 진주시 하대동 아카시아 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4.11.08 -

박지원

| 200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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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밥때를 챙기곤 했던 것 같다
공부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는…


얼마 전에 모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금 이맘때면 형형색색의 온갖 물감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을 교정을 그저 스쳐가는 눈길 한번 주고는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내 생각은 10여 년 전의 학창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국가고시 준비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생활해오던 그 때로.
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일곱 명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여성동지들로만.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후 5시가 되면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학교 앞 여러 분식집들을 헤메고 다니곤 했다.

저녁 한끼를 먹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음식 맛보다 더 맛있는 시간으로 우리는 만들어 갔다. 여학생들의 뜻없는 수다라고 표현할 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어떤 이해관계도 끼어들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
매일 만나는 친구들끼리 무슨 화제가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우리들은 밥을 먹는게 아니라 우정과 사랑을 나눠 먹으면서 쌓여있던 고민들을 모두 표출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본과 4학년 생활이 힘들고 고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들의 맛있는 저녁식사 시간이 하루종일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다스려주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로 가득차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끔씩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았던 날은 꼭 야식을 먹고나서 헤어지곤 했다.
야식만은 어느 곳으로 가자고 얘기하지 않고 늘 정해진 곳으로만 갔다. 아주머니 자매가 운영하시던 탕수떡볶이집으로... 물론 그 다음날은 누군가 한명은 꼭 팅팅 부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곤 했지만 우리들은 그저 한번 크게 웃고서는 지난 시간의 맛있던 추억을 떠올리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밥때를 챙기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는 별게 아닌 것으로 우리들의 이차적인 문제가 돼 버렸던 것 같다.

이제는 졸업 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진료를 하고 있을 일곱명의 친구들과 그 맛있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싶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번씩 모일 때면 우리의 맛있는 시간을 통해 진료현장에서 경험하는 고민들을 모두 털어버릴 수 있는 활력소가 되는 그 시간을... 네모난 진료실 안에서 하루종일 혼자서 싸움하는 홀로되는 시간 가운데 나의 허전함을 달래줄 또 다른 추억을 떠 올릴 그 때를... .
아마도 그때 학교 교정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가 그 친구들과 같이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친구들아 우리 밥먹자!!!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

백승진

| 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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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3년이라는 세월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던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1992년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마지막 수업시간, 맨 뒤에 앉아 졸고있던 나에게 험상궂게 생긴 동기 하나가 다가온다.
"야~!! 니.. 일단 따라온나" --;허걱!
이렇게 영문도 모른채 따라간 곳이 곰팡이 냄새 퀴퀴하게 나는 밴드연습실이었고 부산대학교 치과대학내 'Dentaphone'이라는 메탈 밴드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됐다.
예과 1학년때,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때의 빡빡머리를 보상이라도 하듯, 약간 긴머리(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웠음)를 하고 있었고, 이를 심상치 않게 봤던 동기생 하나가 나를 같은 밴드일원으로 점찍었던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인연을 맺고난 후, 예과 2년을 '음악'이라는 친구와 같이 보냈다.
메탈음악을 처음 접해본 나는 생소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는 음악에 대한 매력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소극적이지도 않았던 그런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음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거의 의무감으로 음악활동을 했고, 본과에 진입하고 나서는 자연스레 음악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막연히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내맘속 깊은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렇게 그렇게... 졸업을 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보건소로 배치돼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낮에는 환자진료와 보건소 업무에 그나마 시간을 보냈지만, 밤이 되면 왠지모를 적막감에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던 어느날, 문득 밴드활동 할때의 추억이 떠올라 "밴드활동을 다시 해볼까?" "다시 음악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던중 '하드레코딩(일명 컴퓨터음악, 미디음악)' 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순간 혼자서도 얼마든지 밴드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동안 먹고 놀고 자도 하는 무미건조한 공보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하드레코딩에 관한 서적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드레코딩'이란 컴퓨터를 이용해 악기를 연주하고 거기에 맞추어 기타나 베이스 등등 다른 악기소리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녹음해 마스터링 하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음악작업을 하는 진보된 작업방식이다.

예전에는 고가의 녹음장비가 갖춰진 큰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의 지시에 따라 연주하고 값비싼 레코딩 기계에 녹음하는 방식이었지만, 요즘 뮤지션들은 거의 다 집에 홈스튜디오를 갖추고 혼자서 연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녹음, 마스터링하는 방식의 이 하드레코딩 방식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창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며칠을 관사방에서 들뜬맘으로 보냈다.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해 조금씩 곡을 만들어가던 어느날, 드디어 나의 첫번째 곡이 완성됐다.

지금 들으면 정말 촌스러운 곡이지만, 그때의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짜릿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나는 생각나는대로 매일 밤 조금씩 작업을 한 결과, 꿈에 그리던 나만의 첫 앨범을 만들게 됐다. 비록 비공식 앨범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맘껏하면서 미흡하지만, 그런대로 좋은 음질의 이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앨범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이라 작품성은 미흡하지만, 같이 밴드활동을 했던 동기·선배들에게도 선보이고 나름대로 좋은 평가도 받았다(순전히 내 생각인가?).

이렇게 힘을 얻어 공보의 3년동안 수십곡 정도의 그런대로 많은 양의 음악작업을 했고, 그 결과 2장의 비공식 앨범을 냈으며, 지금은 세번째 앨범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낯선 곳에서의 공보의 3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하고싶은 만큼 열심히 할수 있었던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한 내 인생에 가장 잊지못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daum' 카페 (cafe.daum.net/heybeck)를 만들어 일주일에 한곡씩 새로운 싱글을 선보이고 있다. 만든지는 한 석달정도 되는데 아직은 회원수가 별로 없어 부끄럽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은 여러 원장님들께서 방문해 주셔서 따뜻한 격려와 음악에 대한 좋은 교류를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원장님들께서 좋은 취미 한가지씩 갖고 활기차게 생활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부럽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골프, 등산, 스키 등 좋은 취미 활동을 하시는 원장님들이 많이 계시고 모두 다 즐겁게 인생을 즐기시는 COOL한 분들이 많다.
내 경우 운동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해 1년전쯤 학부생때 밴드동기들이 주축이 돼 같은 학번동기들끼리 'SUMMITS'(cafe.daum.net/summitsyagoo)라는 야구팀을 만들어 야구라는 스포츠를 같이 즐기고 있다.

모두 부산, 울산에서 개업하고 있는 치과개업의들로 이뤄졌고 최근에는 공보의 선생님 몇분도 가입해 팀원이 14명이나 된 어느정도 사회인 야구팀으로서 손색없는 팀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부산의 사회인야구리그에 소속돼 있고 리그가 끝나면 울산에서 펼쳐질 영남사회인야구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야구'라는 팀플레이 스포츠를 하면서 팀워크도 다지고 같은 동료로서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는 플레이속에 어느덧 나의 생활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비단 야구만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세미나도 같이 하고 친목도모를 위해 골프라운딩이나 가족단위 여행도 같이 즐기는 정말 좋은 하나의 ‘팀’ 이 된 치과의사단체로 발전하게 됐다.
이렇게 환자진료와 다른 많은 업무로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고 반복되는 생활속에 지루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학부때 혹은 몇년전 가졌던 좋은 취미 한가지씩 다시 시작한다면 생활에 신선한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백승진

.99년 부산치대 졸
.부산 하나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

두실부부치과

| 200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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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테니스대회를 주최하는데
막상 추진해 보려고 하니
내가 이런 일을 할 자격도 없는데…


며칠전에 치의신보에서 전화가 왔다. 부치신문에 기고한 글 잘 읽었다고 하면서 글 한 편 부탁한다 하였다. 난감했다. 난 글쓰기를 무척 싫어한다. 아는게 없어서 글이 써지지도 않고 쓰게 되면 똑똑한 척하는 가면이 벗겨지고 무식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탁을 거절하기도 야박해 하나 쓰기는 써야 되겠는데 뭘 쓰나 하다 현재 내가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테니스를 좋아한다. 열심히 해 보려고 한 것은 3년 정도이지만 재미있는 운동이다. 실력은 중하급이다. 시합 나가면 주로 예선 탈락이다. 이런 정도의 실력인 내가 테니스대회를 개최하고자 한 데는 운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느낀바가 있어서이다. 테니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오르기가 다른 운동보다 어렵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 실력을 가져야 게임을 할 수 있게 되고 게임을 해야 빠져 들 수 있다. 맨날 벽치기만 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도를 통한 신선일 것이다. 시간 투자도 많아야 하니 일반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시간 내기가 어렵다.

또한 테니스 장이 경제성이 없어서 자꾸만 사라져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별로 테니스를 하지 않는다.

또한 전문적인 선수가 돼도 현재 프로가 없고 상금이 큰 대회가 별로 없다보니 생계가 어렵다. 이런 여러 어려운 조건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 조금이라도 더 활성화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대회를 한 번 열어보려고 한다. 생각은 많이 하고 있었지만 결정은 간단하게 했다. 운동하고 난 뒤 소주 한 잔 하다가 즉석에서 결정하게 됐다. 다행히 도와 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쉽게 추진 할 수 있게 됐다. 대회를 주최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어하는데 지출하면 그게 나의 즐거움이니까 아깝지 않다.

대회 방식은 단식으로 하고 하급자를 대상으로 한다. 전국 대회 랭킹 포인트가 없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복식 대회는 현재도 많이 있으므로 내가 할 필요가 없고, 하급자 일수록 단식이 파트너가 없으니 우리편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 방식이다. 홀애비 마음은 홀애비가 안다고 내가 하급자 이다보니 하수의 비애를 많이 겪어 보았고 중도에 하차하는 사람들도 보았기에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하고 싶었다.

또한 현재 복식 위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단식을 해 봐야 단식 경기를 봐도 재미있어진다. 내가 가입해서 활동하는 모임중에 테사모 라고 부산 오픈을 주최하는 모임이 있는데 부산 오픈은 챌린저급의 국제 남자 단식 대회이다.

이 대회를 많은 관중이 찾아와 줘야 하는데 단식 테니스를 해 봐야 더 많이 찾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단식 테니스 대회를 주최하는데, 막상 추진해 보려고 하니 내가 이런 일을 할 자격도 없는데 괜히 벌리는 게 아닌가 해서 굉장히 부끄럽다. 대회가 어떻게 끝나게 되고 어떤 평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의 이런 조그마한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전파됐으면 한다.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

박창헌

| 200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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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와 장비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진료에 임하는 내 자신의 마음도
새롭게 그리고 환자입장서 하루하루를…


최근 몇개월 동안은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에 옮기느라 계절의 정취도 느끼지 못할만큼 무척 바쁜 나날이었다.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11년째, 개원초기 2년을 제외하곤 줄곧 운암동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같이 하면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개원 13년째를 맞다보니 익숙한 것, 낯설지 않음이 편했고 꼬맹이었던 환자가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 다시 찾는 등 단골환자들과 만남도 즐거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감과 함께 치과의사로서 진료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 변화와 돌파구가 필요했다.

"1년간 해외연수!, 아니면 새로운 동네로 이전개원을 해볼까, 차라리 마음에 맞는 동료와 공동개원을 모색해 볼까(?)" 등등의 여러 고민끝에 새롭게 치과를 단장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원래 길 건너 쪽에 개원하고 있다가 97년도에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니 인테리어 한지도 7년이 되었다. 그때에 비하면 적지 않는 비용 탓에 선뜻 결정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불황의 골이 깊은 탓에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주위의 충고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왕 마음먹은 것 전면 개보수와 함께 10년이상 된 낡은 장비도 새롭게 교체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막상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하려고 하니 골치아픈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장소에 개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기간동안 임시로 진료할 수 있는 장소를 찾든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공사에 관련된 많은 업체들을 섭외하고 결정내리는 일도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아졌다.

한달동안 쉬어볼까도 했지만 진료를 하는 것이 우리치과를 찾아 주는 환자들에게 불편을 최소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치과옆에 있는 학원의 배려로 학생들의 학습공간을 한달동안 임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창고에 보관할 이삿짐과 임시진료에 필요한 것들을 분류하고자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뒤져보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기 위해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오래된 장비들과 환자들의 진료자료들을 살펴보니 물밀 듯이 그동안 추억들과 사건들이 떠올랐다.

오랜 단골이었던 환자가족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로 뿔뿔히 흩어져 이제는 만나기 어렵게 된 마음아픈 일, 코흘리개 환자가 명문대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아온 일, 치료기간내내 까탈스러웠던 환자를 달래가며 무사히 장치를 풀고 만족할만한 치료성과를 거둬 뿌듯했던 일.... 또 먼지 쌓인 원장실 책상 서랍 속에서 발견한 지금은 모대학 교수가 된 친구가 91년 미국 유학시절 보낸 편지는 옛 추억을 아스라이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금 학원 대기실은 치과진료실, 강의실 중 한개는 환자 대기실, 한개는 원장실이 되어 치과 환자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칠판에 낙서를 하며 학원생이 되어있다. 마치 공중보건의 시절의 진료실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그때는 초보치과의사로서 땀흘리며 얼마나 열심히 진료 하였던가!

이제 1주일 정도만 지나면 정들었던 과거 공간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탈바꿈한 공간으로 옮기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변했지만 91년 개원초기에 구입했던 금성사 마크가 새겨진 냉장고만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빗바래진 색깔이 어색하긴 하지만 멀쩡해 버리기 아깝기도 했고 처음 개원하면서 느꼈던 마음가짐이 금성사 냉장고를 통해 투영되었던 것이다. 개원을 하고 맨 처음으로 맞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다졌던 초심을 다시 가져보고 싶었다. 실내와 장비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진료에 임하는 내 자신의 마음도 새롭게, 그리고 환자입장에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면 현재의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박 창 헌

.88년 전남치대 졸
.현)광주지부 공보이사
.광주 박창헌치과의원 원장

- 치의신보/릴레이수필, 2004.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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